수필부문 우수상
나는 나무에 핀 꽃이 좋다
박미라
나와 남편은 19년 전에 재혼했다. 남편은 사별했고, 나는 이혼을 했다. 남편은 전 아내와 함께 살던 집을 팔고 새집을 사서 살고 있었고, 나도 이혼 후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했다. 내가 재혼하기 전 3년을 살았던 내 집은 처음 이사를 하였을 때. 뒤뜰이 엉망이었다.
아는 분이 그 뒤뜰을 정리 해주고 나무를 심어 주어서 예쁘게 디자인해 준다며 몇 천불을 달라고 했다. 그래서 작업을 부탁했더니 그분은 호미 하나를 가지고 와서 온 뒤뜰을 깨끗이 정리는 해주었었다. 그러나 나무 한 그루도 안 심고 일년생 꽃들만 군데군데 심어 주었다.
남편과 재혼한 후, 우리는 각자의 집을 다팔고 새롭게 주택 단지가 조성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왔다. 이 집은 모델 하우스의 몇 타입중 그중에 하나이다. 우리는 집의 모든 인테리어를 돈을 더 주고 옵션을 선택 했다.
결혼을 5월에 했는데 살림은 8월에 합쳐야 했다. 그 이유는 내 아들이 대학에 가서 기숙사에 들어간 후 그때 살림을 합치기로 한것이다. 혹시 아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나 않을까 해서 5월에 결혼했으면서도 우린 따로 살았다.
남편은 이 하우스 1 단지 내에 먼저 첫번째 새집을 샀었다. 그 집에서 3년을 살면서 바로 옆 2단지가 조성될 때, 이 집을 사면서 자신이 첫번째 새집에서 살면서 불편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체크해서 지금의 집은 그 모든 것들을 보완한 집이어서 살기에 아주 더 편리한 집이 되었다.
두 살림이 합친 살림이어서 우리들의 이삿짐을 다 정리하는 데만 거의 6개월이 걸렸다. 집 안을 정리한 후, 뒤뜰을 드디어 손보기 시작했다. 잔디를 까는 것도 옵션 이라 남편은 돈을 절약하려고 본인이 인부를 한 명 데리고 뒤뜰의 잔디를 사서 직접 깔았다. 잔디를 깔 때 꽃과 나무를 심을 자리를 미리 다 남겨 두었다.
우리 집 뒤뜰은 그린벨트여서 뒤로는 온통 나무숲이다. 그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서 남편은 나무로 펜스를 치지 않고, 초록색 철망으로 펜스를 했다. 덕분에 우리는 웨어 하우저 나무 회사의 갖가지 나무를 다 볼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엔 뒤뜰 화단에 몇 개의 키 작은 나무와 일년생 꽃을 심었는데, 남편과 나는 그 화단에 큰 나무를 심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심게 된 나무가 벚꽃 나무와 라일락과 목련 나무와 무궁화 꽃나무이다.
먼저 벚꽃 나무는 뒤뜰 담장 앞 오른쪽에 심고, 가운데는 라일락을 심고, 왼쪽 담장 곁에는 백목련을 심었다. 또 베란다 양옆에는 보라색 무궁화꽃과 흰색 무궁화꽃을 심었다.
제일 먼저 심었던 벚꽃 나무는 그동안 자라서, 지금은 어느새 그 나뭇가지의 끝이 마치 하늘 그 가운데 있는 것처럼 큰 나무가 되었다. 우리 집에 봄이 온 것을 제일 먼저 알려 주는 것은 바로 벚꽃 나무의 꽃들이다. 분홍색의 자디잔 꽃들이 마치 꽃 구름처럼 일제히 다 피는 날에는 그 나무 근처에 가서 인사까지 하고, 얼마나 대견한지를 말도 해준다.
나무 기둥의 가운데에 몇 개의 벚꽃이 대롱대롱 매달려 피어 있는 것은 참으로 기특해 보인다. 겨우내 눈까지 맞아가며 인내하더니 찬란한 봄을 맞이하여 꽃을 피워낸 그 장한 벚꽃을 나는 모른 체 할 수가 없어서 꽃이 피면 자주 그 나무 앞에 가서 혼잣말을 한다.
유난히 아름다운 초록의 기다란 나뭇잎을 가지고 있는 목련은 벚꽃이 허무하게 지고 난 후 바로 연이어 꽃을 피워 낸다. 왼쪽 담장 곁의 백목련은 내 친정어머니가 좋아하는 꽃나무라 심었다. 특히 어머니는 그 목련꽃 보다, 그 목련 나무의 큰 초록 잎사귀를 아주 좋아하셨다. 부엌 개수대 앞에 있는 창문으로 목련의 꽃을 감상하면서, 꽃나무가 저렇게도 우아할 수 있음에 새삼 감탄을 한다.
가운데 있는 라일락 나무는 목련꽃이 허무하게 지고 나면 보라색 꽃을 보란 듯이 피워 낸다. 이상하게 보라색 꽃은 어느 꽃의 종류이든 참 마음에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다. 그것은 아마도 꽃 색깔 중에서 좀 흔하지 않은 색이라서 그런 것 같다. 라일락 나무는 이름도 아름다워서 더욱 더 좋아 한다. 그 이름만 들어도 왠지 나를 아름다운 소녀 시절로 데려가 주는 것만 같다.
베란다 양옆의 무궁화꽃은 순전히 남편의 뜻으로 심은 꽃나무이다. 무궁화꽃을 심어 놓고 남편은 무척 만족해했다. 먼 이국땅에서 본인 집 뒤뜰에 그 나무를 심어 놓고,“ 이제는 많이 무디어진 애국심을 다시 되살려 줘 그 꽃이 정말 좋다”고 말했다.
남편과 나는 늦게 만났기에 처음 함께 살 때, 서로 뿌리를 내리고 자리를 잡느라 몸살을 앓았다. 나와 너무 다른 남편과는 잦은 부딪침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마치 우리 집 뒤뜰에 막 심어 놓은 나무들과 똑같이 우리들의 관계도 그런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으며 그렇게 서서히 튼튼한 나무처럼 자랐다.남남이었던 우리는 세월이 흐를 수록 더욱더 깊은 관계로 발전해 갔다.
나무는 처음에 어린나무로 심어지거나, 어떤 것은 씨앗부터 시작이 되는 나무도 있다. 그렇게 나무는 땅에 심어지면,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고 푸른 연잎을 낸 후 찬란하게 꽃을 피워낸다. 그리고 낙엽이 지고 앙상한 가지로 겨울을 난다. 가끔 그 위로 엄청난 눈이 내려 무겁게 쌓이기도 한다.
이처럼 나무는 내게 서사적인 생명을 보여 준다. 그 침묵과 인내와 길고 긴 기다림 끝에 찬란한 꽃들을 일제히 피워 내면 그 장관 앞에서 가슴이 다 먹먹하다. 그래서 나는 나무에 핀 꽃들을 한 다발의 꽃 보다도 더 좋아한다. 나무 앞에 서면 어떤 생명의 외경심까지 느껴진다. 어떤 나무는 사람 보다 더 오래 그 자리를 지켜 낸다. 천 년의 세월도 살아낸 나무도 있지 않은가!
나는 우리의 재혼이 그렇다고 생각했다. 뒤늦게 서로 다른 땅에서 살다가 한 화단에 심어진 두 나무가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깊이 뿌리를 내리고 그 가지를 서로 길게 뻗어서 서로 토닥여 주는 그런 나무를 닮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 시애틀의 겨울은 비오고 바람 불고 눈도 내린다. 이 고독한 시간에 우리 집 뒤뜰의 나무들도 우리와 똑같이 고독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다만 나무들은 그 뿌리 아래 땅 밑으로 부지런히 물을 퍼 올려 마른 나뭇가지들이 새순을 품어 안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일하고 있을 것이다.
나무는 나에게 어떤 말을 해주지 않지만 자기 모습만으로도 나에게 선생이 되어 준다. 봄이 오면 활짝 핀 꽃으로, 여름이 오면 그 푸른 잎사귀로 그늘을 만들어 주고, 가을이면 단풍의 아름다움으로 인생의 무상함을 겨울에는 그 추운 날씨에도 그 묵직한 눈의 무게도 그저 견디는 모습으로 나를 일깨워 준다.
이렇게 우리 집 나무들은 나와 남편과 같이 나이 들어가고, 우리들과 같이 또 꿈을 꿀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떠나게 될 때, 그때 꽃으로, 초록의 잎으로, 혹은 단풍잎으로 찬란히 우리를 배웅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날이 더 길어져서 우리 집 나무들과 함께 더 많이 배우는 그런 날들 속에 남편과 함께 있고 싶다. 결국 어쩌면 우리들은 나무보다 더 먼저 먼 길을 떠나게 될 것이다. 그때, 함께 산 세월의 나무들이 주었던 기쁨과 교훈이 우리들의 얼굴을 덮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