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5 압살롬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이르고 아히도벨도 그와 함께 이른지라
15 Meanwhile, Absalom and all the men of Israel came to Jerusalem, and Ahithophel was with him.
16:16 다윗의 친구 아렉 사람 후새가 압살롬에게 나갈 때에 그에게 말하기를 왕이여 만세, 왕이여 만세 하니
16 Then Hushai the Arkite, David’s confidant, went to Absalom and said to him, “Long live the king! Long live the king!”
16:17 압살롬이 후새에게 이르되 이것이 네가 친구를 후대하는 것이냐 네가 어찌하여 네 친구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17 Absalom said to Hushai, “So this is the love you show your friend? If he’s your friend, why didn’t you go with him?”
16:18 후새가 압살롬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여호와와 이 백성 모든 이스라엘의 택한 자에게 속하여 그와 함께 있을 것이니이다
18 Hushai said to Absalom, “No, the one chosen by the Lord, by these people, and by all the men of Israel—his I will be, and I will remain with him.
16:19 또 내가 이제 누구를 섬기리이까 그의 아들이 아니니이까 내가 전에 왕의 아버지를 섬긴 것 같이 왕을 섬기리이다 하니라
19 Furthermore, whom should I serve? Should I not serve the son? Just as I served your father, so I will serve you.”
16:20 압살롬이 아히도벨에게 이르되 너는 어떻게 행할 계략을 우리에게 가르치라 하니
20 Absalom said to Ahithophel, “Give us your advice. What should we do?”
16:21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이르되 왕의 아버지가 남겨 두어 왕궁을 지키게 한 후궁들과 더불어 동침하소서 그리하면 왕께서 왕의 아버지가 미워하는 바 됨을 온 이스라엘이 들으리니 왕과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의 힘이 더욱 강하여지리이다 하니라
21 Ahithophel answered, “Sleep with your father’s concubines whom he left to take care of the palace. Then all Israel will hear that you have made yourself obnoxious to your father, and the hands of everyone with you will be more resolute.”
16:22 이에 사람들이 압살롬을 위하여 옥상에 장막을 치니 압살롬이 온 이스라엘 무리의 눈앞에서 그 아버지의 후궁들과 더불어 동침하니라
22 So they pitched a tent for Absalom on the roof, and he slept with his father’s concubines in the sight of all Israel.
16:23 그 때에 아히도벨이 베푸는 계략은 사람이 하나님께 물어서 받은 말씀과 같은 것이라 아히도벨의 모든 계략은 다윗에게나 압살롬에게나 그와 같이 여겨졌더라
23 Now in those days the advice Ahithophel gave was like that of one who inquires of God. That was how both David and Absalom regarded all of Ahithophel’s advice.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잠 16:32)
좋아하는 성경 구절 중 하나입니다. 성을 빼앗는 것은 용맹한 용사들이지만, 그 모든 것 뒤에는 절제, 셀프컨트롤, 지혜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찌 보면 전쟁터에서 싸우는 용사들은 장기의 말과 같을 뿐, 사실 장기를 두는 사람들은 워룸 War Room에서 전략을 세우고, 용사들에게 전투를 지시하는 지혜의 사람들일 것입니다.
힘이나 용맹함도 중요하지만 절제와 셀프컨트롤, 지혜가 더욱 가치 있음을 알려주는 잠언입니다.
후새의 하얀 거짓말 (15~19절)
다윗과 압살롬의 전쟁은 이제 모사들의 지혜 싸움으로 옮겨 갑니다.
후새는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압살롬과 아히도벨을 맞이합니다.
후새는 압살롬을 맞이하면서 왕이여 만세, 왕이여 만세를 외칩니다(16).
이에 압살롬은 이것이 내가 친구를 후대하는 것이냐 네가 어찌하여 네 친구와 함께 가지 아니 하였느냐 (17)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냅니다. 여기서 압살롬이 말하는 친구는 자신의 아버지 다윗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후새가 워낙 다윗의 충신이었기에 당연히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지혜의 사람 후새는 다음과 같이 답변합니다.
내가 여호와와 이 백성 모든 이스라엘의 택한 자에게 속하여 그와 함께 있을 것이니이다(18)
물론 후새의 이 말은 거짓말입니다. 하지만 이 말은 압살롬의 마음을 아주 흐믓하게 하는 말이었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왕위를 찬탈했다는 조금 남아 있는 죄책감마저 싹 씻어주는 면죄부를 주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온 백성이 압살롬을 왕으로 인정했기에, 나 역시 하나님의 뜻과 백성의 뜻을 따른다는 의미입니다. 압살롬은 너무 기분이 좋아서 후새를 바로 자신의 지략가로 받아들입니다.
후새도 너무 쉽게 자신을 믿어준 압살롬이 당황스러웠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후새의 본심은 압살롬을 환영하는 말에 숨겨져 있습니다. 그는 왕이여 만세를 두번이나 외쳤지만, 어떤 왕인지를 맑히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는 작은 소리로 (다윗) 왕이여 만세를 외쳤을 것입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인으로 생각해볼 문제는 소위 하얀 거짓말에 대한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거짓말이 죄가 아니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때로는 하나님께서 하얀 거짓말을 허용하십니다. 기생 라합이 그랬고, 오늘 본문에 후새가 그렇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인간이 어떤 죄악된 선택을 하든 내버려 두십니다. 암논의 선택, 압살롬의 선택 등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후새가 거짓말을 한 것이 죄인가 아닌가 보다는 그가 거짓말을 통해서 추구한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인지에 좀 더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만일 거짓말 없이도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만 있다면 왜 그 길을 선택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전혀 다른 방법이 없을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이 죄이지만 그 방법을 사용하는 예외도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경우에도 하얀 거짓말은 죄가 아니다 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어쩔 수 없는 상황임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히도벨의 잘못된 지혜 (20~23절)
압살롬은 다윗의 지략가였던 아히도벨에게 자문을 구합니다. 아히도벨은 그가 베푸는 계략은 사람이 하나님께 물어서 받은 말씀과 같은 것이라(23a)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완벽한 지혜의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의 지혜가 하나님의 지혜처럼 선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후새의 거짓말의 지혜는 비록 거짓이라는 죄의 그릇에 담겨 있었지만 하나님의 선을 담고 있었고, 아히도벨의 진실된 지혜는 너무 지금 상황에 합당한 계략이고, 적인 다윗에게 치명적인 계략이지만 결코 하나님의 선이 아닌 악을 담고 있는 그릇이었습니다. 참으로 딜레마입니다.
더러운 그릇에 담긴 깨끗한 물과 아주 깨끗한 그릇에 담긴 오염된 물입니다.
아히도벨은 첫번째 단계로 다윗이 남겨 놓은 후궁들을 백성들이 보는 백주 대낮에 테라스에서 동침하라는 지혜를 베풉니다. 이것은 고대 근동의 방식으로 선왕의 아내나 첩을 취함으로 자신이 진정한 왕이 되었다는 일종의 공식적인 선포로 삼았던 것입니다.
또한 동시에 이것은 다윗왕과는 영영 돌이킬 수 없는 단절의 강을 건너는 것으로, 압살롬을 따르는 자들을 내부적으로 더욱 결속시키는 결과도 가져올 것입니다(21). 일석이조인 셈입니다.
결국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계략을 그대로 실천합니다(22). 그는 온 백성이 볼 수 있도록 옥상에 장막을 치고, 온 이스라엘의 눈 앞에서 그 아버지의 후궁들과 더불어 동침합니다.
이것은 아비의 하체를 범하지 말라는 모세의 율법을 어기는 것입니다(레 18:8; 신 22:30).
동시에 이 일은 나단 선지자가 다윗에게 경고한 예언이 그대로 성취되는 것입니다.
내가 네 눈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온 이스라엘 앞에서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삼하 12:11b, 12)
하나님의 생각과 하시는 일은 참으로 오묘합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 인간의 생각은 다릅니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지혜를 구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아히도벨처럼 그 좋은 지혜를 가지고 하나님의 반대편에 서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 지혜로운 사람이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요?
지혜의 근본은 다른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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