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2 노래하는 자들인 아삽 자손 중 미가의 현손 맛다냐의 증손 하사바의 손자 바니의 아들 웃시는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레위 사람의 감독이 되어 하나님의 전 일을 맡아 다스렸으니
11:23 이는 왕의 명령대로 노래하는 자들에게 날마다 할 일을 정해 주었기 때문이며
22 The chief officer of the Levites in Jerusalem was Uzzi son of Bani, the son of Hashabiah, the son of Mattaniah, the son of Mika. Uzzi was one of Asaph’s descendants, who were the musicians responsible for the service of the house of God. 23 The musicians were under the king’s orders, which regulated their daily activity.
11:24 유다의 아들 세라의 자손 곧 므세사벨의 아들 브다히야는 왕의 수하에서 백성의 일을 다스렸느니라
24 Pethahiah son of Meshezabel, one of the descendants of Zerah son of Judah, was the king’s agent in all affairs relating to the people.
11:25 마을과 들로 말하면 유다 자손의 일부는 기럇 아르바와 그 주변 동네들과 디본과 그 주변 동네들과 여갑스엘과 그 마을들에 거주하며
11:26 또 예수아와 몰라다와 벧벨렛과
11:27 하살수알과 브엘세바와 그 주변 동네들에 거주하며
11:28 또 시글락과 므고나와 그 주변 동네들에 거주하며
11:29 또 에느림몬과 오라와 야르뭇에 거주하며
11:30 또 사노아와 아둘람과 그 마을들과 라기스와 그 들판과 아세가와 그 주변 동네들에 살았으니 그들은 브엘세바에서부터 힌놈의 골짜기까지 장막을 쳤으며
25 As for the villages with their fields, some of the people of Judah lived in Kiriath Arba and its surrounding settlements, in Dibon and its settlements, in Jekabzeel and its villages, 26 in Jeshua, in Moladah, in Beth Pelet, 27 in Hazar Shual, in Beersheba and its settlements, 28 in Ziklag, in Mekonah and its settlements, 29 in En Rimmon, in Zorah, in Jarmuth, 30 Zanoah, Adullam and their villages, in Lachish and its fields, and in Azekah and its settlements. So they were living all the way from Beersheba to the Valley of Hinnom.
11:31 또 베냐민 자손은 게바에서부터 믹마스와 아야와 벧엘과 그 주변 동네들에 거주하며
11:32 아나돗과 놉과 아나냐와
11:33 하솔과 라마와 깃다임과
11:34 하딧과 스보임과 느발랏과
11:35 로드와 오노와 장인들의 골짜기에 거주하였으며
31 The descendants of the Benjamites from Geba lived in Mikmash, Aija, Bethel and its settlements, 32 in Anathoth, Nob and Ananiah, 33 in Hazor, Ramah and Gittaim, 34 in Hadid, Zeboim and Neballat, 35 in Lod and Ono, and in Ge Harashim.
11:36 유다에 있던 레위 사람의 일부는 베냐민과 합하였느니라
36 Some of the divisions of the Levites of Judah settled in Benjamin.
여러분 오늘의 본문 말씀은 하나님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또 사람에 대해, 인간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씀하고 계십니까? 예루살렘 성벽 공사가 잘 마무리되었지만 “그 성읍은 광대하고 그 주민은 적으며 가옥은 미처 건축하지 못하였음이니라”라는 7:4의 말씀처럼 예루살렘 성읍 그 자체는 주민이 없어 제대로 된 성읍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었습니다. 대적들로부터 성과 성전을 지키려면 충분한 인구가 성읍안에 거주해야 하는데 한 번 폐허가 되었던 성읍에 다시 사람들을 채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분깃으로 받은 땅을 떠나 성읍으로 들어가 산다는 것은 자신의 분깃을 포기하는 의미가 있었을 것이기에 큰 희생이 필요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온가족을 이끌고 예루살렘 성읍으로 들어왔다고 하더라도 이곳은 가옥도 제대로 건축되지 않은 아무런 인프라가 없는 곳입니다. 성벽만 덩그러니 있고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이곳에 누가 오려고 할까요? 그래서 어제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처럼 백성의 지도자들이 먼저 솔선수범하여 예루살렘에 거주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남은 이들 중에 자원하는 사람들과 제비를 뽑아 걸린 10할의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거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2절을 보니 백성들은 그들의 희생을 자원하는 모든 자를 위해 복을 빌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난 주일부터 오늘까지의 말씀은 이렇게 예루살렘 성읍에 살기로 결정한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하여 그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What does today's scripture say about God? And what does it say about people, about humanity? Although the construction of the Jerusalem wall was well completed, as stated in 7:4, "Now the city was large and spacious, but there were few people in it, and the houses had not yet been rebuilt," the city of Jerusalem itself could not function properly as a city without inhabitants. To protect the city and the temple from enemies, a sufficient population needed to reside within the city, but it was not easy to repopulate a city that had once been in ruins. Above all, leaving the land they had received as their inheritance to live in the city would have meant giving up their inheritance, so it would have required a great sacrifice. Moreover, even if they had brought their entire family into the city of Jerusalem, this was a place with no infrastructure where houses had not been properly built. Who would want to come to this place where only the walls stand, and everything needs to be started anew? That's why, as the pastor mentioned yesterday about noblesse oblige, the leaders of the people first set an example by residing in Jerusalem. And it is said that among the remaining people, those who volunteered and those who were chosen by lot (one out of ten) came to live in Jerusalem. So in verse 2, we see that the people blessed all who volunteered to live in Jerusalem. And from last Sunday until today, the scripture has been recording the names of these people who decided to live in the city of Jerusalem, expressing gratitude to them.
그렇다면 예루살렘 성에 거주하는 것은 그저 희생만을 의미하는 것이었을까요? 그렇지만은 않은것 같습니다. 1절에 보니 이들은 그 예루살렘 성을 가르켜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라고 합니다. 그 성에 들어가 산다는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공동체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많은 희생이 따를지라도 이들은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러한 모습들은 오늘 본문 말씀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들은 현실적인 어려움 가운데 있었지만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회복을 향한 노력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현실의 그늘에도 굴하지 않고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Then, did living in the city of Jerusalem only mean sacrifice? It doesn't seem so. In verse 1, we see that they refer to this city as "the holy city Jerusalem." Living in that city meant the restoration of the community chosen by God. Although it involved many sacrifices, they did their best for the restoration of the community. We can find these aspects in today's scripture as well. In today's passage, we can see that the Israelites, despite facing realistic difficulties, did not give up and made efforts towards restoration. Yes, we must strive for the restoration of the community without succumbing to the shadows of reality.
오늘 말씀에 나타난 회복을 향한 노력, 첫번째. 예루살렘 안에서의 노력입니다. 오늘 말씀은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요 24절까지는 예루살렘 안에서의 노력 그리고 36절까지는 예루살렘 성 바깥쪽의 노력에 대해서 알 수 있습니다. 먼저 24절까지의 말씀을 보았더니 두 사람의 이름이 나옵니다. 첫번째 사람은 웃시입니다. 22절에 보니 웃시를 가르켜 “노래하는 자들인 아삽자손 중”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성경의 시편을 얘기할 때 다윗이 모든 시편을 쓴 것으로 알고있지만 사실 아삽도 시편 150편 중 12편의 시편을 쓴 시인입니다. 시편 50편과 73-83편까지가 그가 쓴 시입니다. 그는 다윗 왕때에 하나님의 전에서 봉사했던 찬양하는 자였습니다. 웃시는 그런 아삽의 자손이라고 합니다. 22절에 “웃시는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레위 사람의 감독이 되어 하나님의 전 일을 맡아 다스렸으니”라고 합니다. 그는 제사장을 도와 성전에서 봉사하는 레위인들의 총감독이었다고 합니다. 제사를 집도하는 것을 제외한 성전에서의 모든 일을 맡아 다스렸다고 합니다. 이를 통하여 그는 예루살렘 성 안에서의 예배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예배의 회복을 위해 노력한다고 할 지라도 페르시아의 종된 그들의 상황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23절을 보니 “이는 왕의 명령대로 노래하는 자들에게 날마다 할 일을 정해 주었기 때문이며”라고 합니다. 웃시가 아삽의 자손임을 감안할 때. 그리고 찬양하는 자들이 레위 사람들이었음을 생각할 때 웃시가 노래하는 자들에게 날마다 할 일을 정해 주었던 것은 당연한 것이었겠죠. 그러나 그는 단순히 하나님의 성전 모든 일을 맡은 자여서, 또는, 그가 예루살렘의 레위인들의 총 감독이어서 예배의 회복만을 위해 찬양대의 할 일을 정해 줄 수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의 현실은 왕의 명령을 따르는 자로 페르시아 왕의 명령대로 찬양대의 할 일을 정하는 사람이었습니다.
The efforts towards restoration shown in today's scripture, first, are the efforts within Jerusalem. Today's passage is divided into two parts: until verse 24, we can see the efforts within Jerusalem, and until verse 36, we can see the efforts outside the walls of Jerusalem. Looking at the scripture up to verse 24, two names appear. The first person is Uzzi. In verse 22, Uzzi is described as "of the descendants of Asaph, who were the musicians." When we talk about the Psalms in the Bible, we often think that David wrote all the psalms, but in fact, Asaph also wrote 12 of the 150 psalms. Psalms 50 and 73-83 are the ones he wrote. He was a praise singer who served in God's temple during King David's time. Uzzi is said to be a descendant of such Asaph. Verse 22 says, "The chief officer of the Levites in Jerusalem was Uzzi son of Bani, the son of Hashabiah, the son of Mattaniah, the son of Mica. Uzzi was one of Asaph's descendants, who were the musicians responsible for the service of the house of God." He was the chief supervisor of the Levites who assisted the priests and served in the temple. He was in charge of all the work in the temple except for conducting the sacrifices. Through this, he worked to restore worship within the city of Jerusalem. However, even though they worked to restore worship, their situation as subjects of Persia did not change. Verse 23 says, "The musicians were under the king's orders, which regulated their daily activity." Considering that Uzzi was a descendant of Asaph, and that the singers were Levites, it would have been natural for Uzzi to assign daily tasks to the singers. However, he was not able to assign tasks to the choir simply because he was in charge of all the work in God's temple, or because he was the chief supervisor of the Levites in Jerusalem. His reality was that he was a person who followed the king's orders, assigning tasks to the choir according to the Persian king's command.
24절에 등장하는 브다히야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24절을 보니 “브다히야는 왕의 수하에서 백성의 일을 다스렸느니라”라고 합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 안에서의 사람들의 일들을 다스리는 사람이었지만 그 또한 페르시아 왕의 수하로써 왕의 명령을 따라야하는 현실 아래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그러한 현실의 어려움 가운데서도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예루살렘 성에 들어와 헌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페르시아의 속국이라는 현실 가운데 있더라도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과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동체를 다시 세우기 위해 이들은 현실의 그늘에도 굴하지 않고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Pethahiah, who appears in verse 24, was in the same situation. Verse 24 says, "Pethahiah son of Meshezabel, one of the descendants of Zerah son of Judah, was the king's agent in all affairs relating to the people." He was a person who managed the affairs of the people within the city of Jerusalem, but he too would have lived under the reality of having to follow the king's orders as a subject of the Persian king. But despite these difficult realities, they are dedicating themselves by giving up their rights and entering the city of Jerusalem for the restoration of the community. Even though they are in the reality of being a vassal state of Persia, they are not succumbing to the shadows of reality and are working hard for restoration to rebuild the identity of God's people and the community that worships God.
그렇다면 예루살렘 성 바깥은 어땠을까요? 오늘 말씀 25절부터 36절까지를 보니 유다 자손들과 베냐민 자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러분 아시다시피 이스라엘이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갈라졌을 때, 남유다에 남은 지파들은 다윗의 지파였던 유다 지파와 사울의 지파였던 베냐민 지파, 그리고 각지파에 퍼져 살았던 레위 지파 뿐이었습니다. 북 이스라엘이 앗시리아 제국에 멸망하여 예전 북이스라엘이 있던 지역은 앗시리아의 혼혈정책으로 이방인들과 피가 섞여 사마리아가 되지요. 지금 페르시아 속국으로 있는 유다 백성들이 사는 지역은 유대지방으로 페르시아가 이들에게 할당한 지역은 예전 남유다 땅보다 작은 땅이었습니다. 그 유대지방 밑의 땅은 이두메라하여 야곱의 형이었던 에서의 자손들인 에돔족속의 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25절을 보니 “마을과 들로 말하면 유다 자손의 일부는 기럇 아르바와”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기럇 아르바는 후에 헤브론이라 불리는 도시로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20마일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도시인데 이는 유대 땅이 아닙니다. 이두메 땅입니다. 게다가 27절에 “브엘세바와 그 주변 동네들에 거주하며”라고 하는데 브엘세바는 아까 그 기럇 아르바에서 남서쪽으로 29마일 떨어져 있는 도시입니다. 역시 이두메 땅입니다. 28절에 시글락도 30절의 라기스도 유대땅을 한 참 벗어납니다. 30절 뒷부분을 보니 유다지파의 거주지를 종합하여 “그들은 브엘세바에서부터 힌놈의 골짜기까지 장막을 쳤으며” 라는 부분이 나옵니다. 이는 여호수아 15장에 있는 유다자손의 분깃, 즉 옛적의 영토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유대지방이라는 지역에 갖혀 살아야하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예전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약속의 땅을 다시금 회복하려 노력하는 것입니다. 30절에 “장막을 쳤으며”라는 말은 이들이 임시로 이 땅에서 살았다는 뜻이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마치 초막절을 지키며 하나님께서 이들을 이끄시어 애굽에서 나왔던 때를 기억하며 즐거워 하였던 것처럼 장막을 치다 라고 표현함으로서 하나님께서 이들을 이끄셨던 시절을 다시금 회복하고픈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현실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마을들에 거주하며”라고 할 때에 그것이 그들이 에돔자손들의 땅을 자신들의 것으로 주장하였던 것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도 그들과 최대한 부딪히지 않으면서 그 땅에서 살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 또한 예루살렘 바깥에서 옛 영토를 회복하고자 한 그들의 노력을 볼 수 있습니다.
Then what about outside the walls of Jerusalem? Looking at verses 25 to 36 of today's passage, we see the story of the descendants of Judah and Benjamin. As you know, when Israel was divided into Northern Israel and Southern Judah, the tribes that remained in Southern Judah were the tribe of Judah, which was David's tribe, the tribe of Benjamin, which was Saul's tribe, and the Levites who were scattered among each tribe. When Northern Israel was destroyed by the Assyrian Empire, the region where Northern Israel used to be became Samaria due to Assyria's mixed-blood policy with foreigners. The area where the people of Judah, now a vassal state of Persia, live is the Judean region, and the area allocated to them by Persia was smaller than the former Southern Judah. The land below the Judean region became Idumea, the land of the Edomites, descendants of Esau, Jacob's brother. But in verse 25, it says, "As for the villages with their fields, some of the people of Judah lived in Kiriath Arba." This Kiriath Arba is the city later called Hebron, located about 20 miles south of Jerusalem, and this is not Judean land. It's Idumean land. Moreover, verse 27 says, "in Beersheba and its surrounding villages," and Beersheba is a city 29 miles southwest of Kiriath Arba. It's also Idumean land. Ziklag in verse 28 and Lachish in verse 30 are also well beyond Judean territory. The latter part of verse 30 summarizes the residence of the tribe of Judah, saying, "They lived from Beersheba to the Valley of Hinnom." This refers to the inheritance of the descendants of Judah in Joshua 15, that is, the ancient territory. Despite the reality of having to live confined to the Judean region, they are trying to restore the Promised Land that God had promised in the past. The phrase "pitched tents" in verse 30 probably doesn't mean they lived temporarily in this land. Rather, by expressing it as "pitched tents," just as they rejoiced remembering the time when God led them out of Egypt while observing the Feast of Tabernacles, they are expressing their desire to restore the era when God led them. Their reality must not have been easy. When it says "living in their villages," it doesn't seem that they claimed the land of the Edomites as their own. They probably lived in that land while trying to avoid conflicts with them as much as possible. Nevertheless, we can see their efforts to restore the old territory outside of Jerusalem.
말씀을 맺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각자 현실의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를 회복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현실에서 그들은 아직도 페르시아의 지배 아래에 있는 형편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안에서는 예배를 회복하려 노력하고 또 사람들을 공정하게 다스리려 노력하였으며 예루살렘 밖에서는 다시금 하나님 중심의 공동체가 되려하며 그 옛 영토의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우리의 현실이 우리를 좌절 시킬지라도, 우리의 현실이 우리를 낙담하게 만들지라도, 우리는 현실의 그늘에 굴하지 않고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To conclude the message, we could see that the Israelites were trying to restore God's community despite their individual difficulties in reality. Although in reality they were still under Persian rule, they nevertheless tried to restore worship within Jerusalem, tried to govern people fairly, and outside Jerusalem, they tried to become a God-centered community again and did their best to restore their old territory. The same applies to us. Even if our reality disappoints us, even if our reality discourages us, we must not succumb to the shadows of reality and strive for the restoration of the commu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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