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검색

20240927 [새벽묵상] 기쁨으로 날아오르는 공동체 | A Community Soaring with Joy (느/Neh 12:31~47)



12:31 이에 내가 유다의 방백들을 성 벽위에 오르게 하고 또 감사 찬송하는 자의 큰 무리를 둘로 나누어 성벽 위로 대오를 지어 가게 하였는데 한 무리는 오른쪽으로 분문을 향하여 가게 하니

12:32 그들의 뒤를 따르는 자는 호세야와 유다 지도자의 절반이요

12:33 또 아사랴와 에스라와 므술람과

12:34 유다와 베냐민과 스마야와 예레미야이며

12:35 또 제사장들의 자손 몇 사람이 나팔을 잡았으니 요나단의 아들 스마야의 손자 맛다냐의 증손 미가야의 현손 삭굴의 오대 손 아삽의 육대 손 스가랴와

12:36 그의 형제들인 스마야와 아사렐과 밀랄래와 길랄래와 마애와 느다넬과 유다와 하나니라 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악기를 잡았고 학사 에스라가 앞서서

12:37 샘문으로 전진하여 성벽으로 올라가는 곳에 이르러 다윗 성의 층계로 올라가서 다윗의 궁 윗길에서 동쪽으로 향하여 수문에 이르렀고

31 I had the leaders of Judah go up on top of the wall. I also assigned two large choirs to give thanks. One was to proceed on top of the wall to the right, toward the Dung Gate. 32 Hoshaiah and half the leaders of Judah followed them, 33 along with Azariah, Ezra, Meshullam, 34 Judah, Benjamin, Shemaiah, Jeremiah, 35 as well as some priests with trumpets, and also Zechariah son of Jonathan, the son of Shemaiah, the son of Mattaniah, the son of Micaiah, the son of Zakkur, the son of Asaph, 36 and his associates—Shemaiah, Azarel, Milalai, Gilalai, Maai, Nethanel, Judah and Hanani—with musical instruments prescribed by David the man of God. Ezra the teacher of the Law led the procession. 37 At the Fountain Gate they continued directly up the steps of the City of David on the ascent to the wall and passed above the site of David’s palace to the Water Gate on the east.


12:38 감사 찬송하는 다른 무리는 왼쪽으로 행진하는데 내가 백성의 절반과 더불어 그 뒤를 따라 성벽 위로 가서 화덕 망대 뒷길로 성 벽 넓은 곳에 이르고

12:39 에브라임 문 위로 옛문과 어문과 하나넬 망대와 함메아 망대를 지나 양문에 이르러 감옥 문에 멈추매

38 The second choir proceeded in the opposite direction. I followed them on top of the wall, together with half the people—past the Tower of the Ovens to the Broad Wall, 39 over the Gate of Ephraim, the Jeshanah Gate, the Fish Gate, the Tower of Hananel and the Tower of the Hundred, as far as the Sheep Gate. At the Gate of the Guard they stopped.


12:40 이에 감사 찬송하는 두 무리가 하나님의 전에 섰고 또 나와 민장의 절반도 함께 하였고

12:41 제사장 엘리아김과 마아세야와 미냐민과 미가야와 엘료에내와 스가랴와 하나냐는 다 나팔을 잡았고

12:42 또 마아세야와 스마야와 엘르아살과 운시와 여호하난과 말기야와 엘람과 에셀이 함께 있으며 노래하는 자는 크게 찬송하였는데 그 감독은 예스라히야라

12:43 이 날에 무리가 큰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부녀와 어린 아이도 즐거워하였으므로 예루살렘이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

40 The two choirs that gave thanks then took their places in the house of God; so did I, together with half the officials, 41 as well as the priests—Eliakim, Maaseiah, Miniamin, Micaiah, Elioenai, Zechariah and Hananiah with their trumpets— 42 and also Maaseiah, Shemaiah, Eleazar, Uzzi, Jehohanan, Malkijah, Elam and Ezer. The choirs sang under the direction of Jezrahiah. 43 And on that day they offered great sacrifices, rejoicing because God had given them great joy. The women and children also rejoiced. The sound of rejoicing in Jerusalem could be heard far away.


12:44 그 날에 사람을 세워 곳간을 맡기고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돌릴 것 곧 율법에 정한 대로 거제물과 처음 익은 것과 십일조를 모든 성읍 밭에서 거두어 이 곳간에 쌓게 하였노니 이는 유다 사람이 섬기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기 때문이라

12:45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결례의 일을 힘썼으며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도 그러하여 모두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의 명령을 따라 행하였으니

12:46 옛적 다윗과 아삽의 때에는 노래하는 자의 지도자가 있어서 하나님께 찬송하는 노래와 감사하는 노래를 하였음이며

12:47 스룹바벨 때와 느헤미야 때에는 온 이스라엘이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에게 날마다 쓸 몫을 주되 그들이 성별한 것을 레위 사람들에게 주고 레위 사람들은 그것을 또 성별하여 아론 자손에게 주었느니라

44 At that time men were appointed to be in charge of the storerooms for the contributions, firstfruits and tithes. From the fields around the towns they were to bring into the storerooms the portions required by the Law for the priests and the Levites, for Judah was pleased with the ministering priests and Levites. 45 They performed the service of their God and the service of purification, as did also the musicians and gatekeepers, according to the commands of David and his son Solomon. 46 For long ago, in the days of David and Asaph, there had been directors for the musicians and for the songs of praise and thanksgiving to God. 47 So in the days of Zerubbabel and of Nehemiah, all Israel contributed the daily portions for the musicians and the gatekeepers. They also set aside the portion for the other Levites, and the Levites set aside the portion for the descendants of Aaron.


 

 


날아 다니는 짐승이나 곤충, 비행기를 보면 거의 대부분이 양쪽에 대칭을 이루는 날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만일 양 날개 중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면 더 이상 날 수 없습니다.

어느 한쪽이 더 크다고 결코 좋은 것이 아닙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이끌어가는 큰 축이 있는데, 그것은 대그룹과 소그룹입니다.

저는 이것을 교회의 양날개라고 표현합니다. 대그룹은 말 그대로 20명 이상이 모여 함께 무엇인가를 하는 큰 그룹입니다. 대체적으로 교회에서는 예배와 같은 모임입니다. 그리고 소그룹은 말 그대로 10명 이하의 작은 모임을 말하며, 대표적인 것이 구역 또는 다락방, 순으로 불리는 셀그룹입니다.

두 그룹은 그 목적 자체가 다릅니다. 대그룹은 일방적인 교육이나 전달에 적합합니다. 반면에 소그룹은 반대로 그룹 구성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모임입니다. 그래서 성공하는 교회나 공동체는 이 두 가지 그룹의 기능이 살아서 서로 상호 보완적으로 잘 작동합니다. 날개 하나만 가지고는 결코 높이 날아오를 수 없는 것입니다.

 

When we observe flying creatures, whether birds, insects, or airplanes, most have symmetrical wings on both sides. If one of these wings is damaged, they can no longer fly. Having one wing larger than the other is not advantageous.

The same principle applies to the church. The church is driven by two main components, which can be likened to the two wings of a bird: large groups and small groups. I refer to these as the church's two wings. A large group consists of more than 20 people gathered together for a common purpose, such as worship services in a church. On the other hand, a small group typically involves fewer than 10 people, like cell groups or house gatherings. These two groups serve different purposes. Large groups are suited for one-way teaching or communication, whereas small groups allow for interactive participation among members. Successful churches or communities ensure that these two types of groups function well together, complementing each other. With only one wing, a community cannot soar high.



공동체의 또 다른 두 날개 (31~39절)

오늘 본문은 시간적으로 따지면 느헤미야서 7장 뒤에 이어져야 하는 장면입니다.

52일간의 성벽건축을 마치고, 큰 기쁨으로 하나님 앞에 성벽 봉헌식을 하는 장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자는 의도적으로 성전과 성벽을 건축한 후에 그곳을 성도들과 그들의 헌신과 신앙의 개혁으로 채워야 함을 8~11장에서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12장에 이르러 하나님 앞에 성전 봉헌식 못지않은 성벽 봉헌식을 기록합니다.

저는 오늘 본문은 알레고리적(풍유적, 상징적) 해석을 하고자 합니다.

성벽 봉헌식에서 느헤미야는 자신이 이끄는 무리와 학사 에스라가 이끄는 두 무리로 나눠서 반대로 성벽을 돌아 성전 앞 감옥 문 앞에서 만나 봉헌 제사를 드립니다.

이렇게 두 무리로 나눠서 성벽을 걸은 것은 시간적, 공간적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동시에 개인적으로 이 장면을 보면서 느헤미야와 학사 에스라로 표현되는 것이 이 공동체의 두 날개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느헤미야 공동체가 성벽을 건축할 수 있었던 것은 느헤미야로 상징되는 조직력, 행정력, 현실감각과 에스라로 상징되는 신앙과 개혁, 말씀과 회개가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정리하자면 날아오르는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대그룹과 소그룹이라는 시스템의 날개가 건강하게 작동해야 합니다. 동시에 이성과 합리성이 작동하는 조직과 행정이 확실하게 작동해야 하며, 동시에 교회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말씀과 신앙과 삶의 개혁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하드웨어, 곧 그릇이라고 할 수 있는 성전, 성벽과 같은 공간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The Community's Other Two Wings (Nehemiah 12:31-39)

Today's passage should chronologically follow Nehemiah chapter 7, as it depicts the scene where the wall is dedicated to God with great joy after 52 days of construction. However, as previously mentioned, the author intentionally shows in chapters 8-11 that the temple and wall must be filled with the dedication and faith of the people. In chapter 12, the dedication of the wall is recorded with a ceremony as grand as the dedication of the temple. Today, I will interpret this passage allegorically (using symbolic representation). During the wall dedication, Nehemiah divides the people into two groups, one led by himself and the other by the scribe Ezra. They walk around the wall in opposite directions and meet in front of the prison gate to offer a dedication sacrifice. This division into two groups may have been due to temporal and spatial reasons. Personally, I interpret the two leaders, Nehemiah and Ezra, as representing the community's two wings. The Nehemiah community was able to construct the wall because of the balance between the organizational strength, administrative abilities, and realism symbolized by Nehemiah, and the faith, reform, scripture, and repentance symbolized by Ezra. In summary, for a community to soar, the wings of the system—large groups and small groups—must function healthily. Simultaneously, the organization and administration, driven by reason and rationality, must work effectively, while the core elements of the church—scripture, faith, and life reform—remain vibrant. Additionally, there must be a physical space, like the temple and the wall, to contain all these aspects.



기쁨 넘치는 예배 공동체 (40~47절)

느헤미야는 성벽 봉헌식을 위해서 두 무리로 나눠서 성벽을 돌아 성전으로 이동합니다.

이렇게 함으로 인해 모든 백성이 함께 하나님 앞에 봉헌을 드리며, 하나님이 세우신 성벽이 얼마나 튼튼한 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학사 에스라가 인도하는 무리는 골짜기 문에서 남쪽 끝 성벽 문인 똥문을 지나 동쪽 문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여 수문을 지나 감옥문에 이릅니다. 반대로 느헤미야가 이끄는 나머지 무리는 북쪽으로 이동하여 옛문, 어문, 하나넬 망대, 함메아 망대를 지나 감옥문에 이릅니다. 감옥문 앞에서 만난 것은 그곳이 바로 성전이 있는 문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A Worshipping Community Overflowing with Joy (Nehemiah 12:40-47)

Nehemiah leads the people around the wall in two groups towards the temple for the wall dedication ceremony. This allowed all the people to join in offering the dedication to God and to witness the strength of the wall God had established. Ezra's group starts at the Valley Gate, moves past the Dung Gate at the southern end of the wall, and proceeds eastward past the Water Gate to the Prison Gate. Nehemiah's group moves northward, passing the Old Gate, Fish Gate, Hananel Tower, and Hammeah Tower, to arrive at the Prison Gate. They meet in front of the gate because it is the entrance to the temple.


그곳에서 지도자, 제사장, 찬양대, 레위인, 일반 백성 할 것 없이 모두가 모여서 큰 제사를 드리고 심히 기뻐합니다(43a). 남녀노소할 것 없이 모두가 한데 어우러져 기뻐하였고, 그 소리는 예루살렘 먼 곳에까지 들렸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이 기뻐할 수 있었던 원인을 느헤미야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기 때문(43)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예배의 본질은 기쁨입니다. 왜 기쁩니까? 하나님께서 죄의 굴레를 굴려 버렸기 때문입니다.

70년의 포로 생활을 마치고, 100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 비로소 죄악으로 잃었던 거룩한 도성을 되찾은 것입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니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다음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기 때문입니다. 죄의 담을 하나님이 허물어 주시니 다시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백성들 서로의 관계가 회복되었기 때문입니다. 권력을 가지고 압제하고, 핍박하던 기득권층이 말씀대로 연약한 자를 다시 돌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At this point, the leaders, priests, choir, Levites, and all the people gather to offer a great sacrifice and rejoice greatly (verse 43a). The joy of men and women alike is so immense that their voices are heard far away in Jerusalem. Nehemiah attributes this joy to God making them rejoice greatly (verse 43). Indeed, the essence of worship is joy. Why do we rejoice? Because God has removed the shackles of sin. After 70 years of captivity and nearly 100 years later, the holy city lost due to sin is finally restored. With the problem of sin resolved, how could they not rejoice? Additionally, the relationship with God was restored as He tore down the wall of sin. Finally, the relationships among the people were also restored, as the privileged class who had oppressed others began to care for the weak according to God's word.



이렇게 회복된 예배가 지속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율법에 정한대로 거제물의 처음 익은 것과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성전에 곳간을 만들고 백성들이 드리는 예물을 곳간에 쌓았습니다. 결론적으로 느헤미야는 47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스룹바벨 때와 느헤미야 때에는 온 이스라엘이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에게 날마다 쓸 몫을 주되 그들이 성별한 것을 레위 사람들에게 주고 레위 사람들은 그것을 또 성별하여 아론 자손에게 주었느니라

 

그리고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유대 백성들이 섬기는 제사장, 레위 사람들로 말미암아 즐거워했기 때문(44b)입니다.

예배가 기쁨으로 지속되기 위해서는 예배를 섬기는 제사장, 레위인, 찬양인도자, 찬양대, 문지기가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구약에서 십일조를 강조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것을 지키지 않아서, 신앙이 무너지고, 결국 국가가 망하게 된 것입니다.

예배가 살아야 성도 개인이 삽니다. 그리고 성도가 살아야 가정이 살고, 가정이 살아야 교회가 삽니다. 그리고 교회가 살아야 나라가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 시작이 무엇입니까? 예배입니다.

그리고 그 예배를 섬기는 자들이 예배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예배의 기쁨이 넘치게 되고, 기쁨 넘치는 예배하는 공동체는 날아오를 수 있는 것입니다.


For this restored worship to continue, it is essential to offer the first fruits and tithes as prescribed by the law. Nehemiah, therefore, made storehouses in the temple to collect the offerings from the people. In conclusion, Nehemiah states in verse 47:


"In the days of Zerubbabel and Nehemiah, all Israel gave the daily portions for the singers and the gatekeepers; they set apart that which was for the Levites, and the Levites set apart that which was for the sons of Aaron."


This was possible because the people of Judah rejoiced over the priests and Levites who served (verse 44b). For worship to continue joyfully, the priests, Levites, worship leaders, choir members, and gatekeepers must be able to live stable lives. This is why God emphasized tithing in the Old Testament. When the Israelites failed to keep this, their faith crumbled, and eventually, the nation fell. For worship to be alive, each believer must thrive. When believers thrive, families thrive, and when families thrive, the church thrives. When the church thrives, the nation can live healthily. What is the starting point? Worship. And those who serve in worship must be supported so that they can focus entirely on worship. When this happens, the joy of worship will overflow, and a community that worships joyfully can soar.


Comment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