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2: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2:13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Paul Opposes Cephas]
11 When Cephas came to Antioch, I opposed him to his face, because he stood condemned. 12 For before certain men came from James, he used to eat with the Gentiles. But when they arrived, he began to draw back and separate himself from the Gentiles because he was afraid of those who belonged to the circumcision group. 13 The other Jews joined him in his hypocrisy, so that by their hypocrisy even Barnabas was led astray.
2:14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14 When I saw that they were not acting in line with the truth of the gospel, I said to Cephas in front of them all, “You are a Jew, yet you live like a Gentile and not like a Jew. How is it, then, that you force Gentiles to follow Jewish customs?
2:15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15 “We who are Jews by birth and not sinful Gentiles 16 know that a person is not justified by the works of the law, but by faith in Jesus Christ. So we, too, have put our faith in Christ Jesus that we may be justified by faith in Christ and not by the works of the law, because by the works of the law no one will be justified.
2:17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드러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2:18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17 “But if, in seeking to be justified in Christ, we Jews find ourselves also among the sinners, doesn’t that mean that Christ promotes sin? Absolutely not! 18 If I rebuild what I destroyed, then I really would be a lawbreaker.
2: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2: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19 “For through the law I died to the law so that I might live for God. 20 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 and I no longer live, but Christ lives in me. The life I now live in the body, I live by faith in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21 I do not set aside the grace of God, for if righteousness could be gained through the law, Christ died for nothing!”
2000년 기독교의 장구한 역사 가운데 수많은 총회(공의회)들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교부와 신학자들이 오랜 기간을 연구하고 토론하며 결정된 것들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삼위일체와 같은 기독교의 핵심적 교리들입니다. 그만큼 니케아(325년), 칼케돈(451년) 같은 공의회들은 매우 중요한 총회였습니다.
이러한 회의들의 첫 시작은 언제였을까요? 그것은 사도행전 15장에 등장하는 예루살렘 총회입니다.
바울은 사도행전만 놓고 살펴볼 때 총 3번 예루살렘에 방문한 기록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회심 후 3년이 지난 시점 베드로를 만나 교제하기 위해서 입니다(행 9:26).
두번째는 안디옥교회의 구제헌금을 전달하기 위해 바나바와 함께 예루살렘을 방문한 것입니다(행 11:29, 30; 12:25).
세번째는 유대로부터 온 어떤 사람들이 이방인 성도들의 할례를 주장하며 교회를 어지럽히자 예루살렘 총회에 방문하여 이에 대한 지침을 얻기 위해 방문한 것입니다(행 15장). 바로 이 방문이 갈라디아서 2장 1절에 기록된 십사 년 후 바나바, 디도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갔다는 총회입니다.
Throughout the long 2000-year history of Christianity, there have been many councils (ecumenical councils). The core doctrines of Christianity, such as the Trinity, were developed through long research and debate by many church fathers and theologians. Councils like Nicaea (325 AD) and Chalcedon (451 AD) were particularly significant.
When did these councils begin?
The first one mentioned in Scripture is the Council of Jerusalem, found in Acts 15. Paul made three recorded visits to Jerusalem, as detailed in Acts. The first was three years after his conversion to meet and fellowship with Peter (Acts 9:26).
The second was when Paul, along with Barnabas, delivered relief funds from the church in Antioch (Acts 11:29–30; 12:25).
The third was when certain individuals from Judea demanded that Gentile believers be circumcised, which led Paul to visit Jerusalem for guidance (Acts 15). This visit corresponds to the one mentioned in Galatians 2:1, where Paul, Barnabas, and Titus go to Jerusalem fourteen years later.
베드로는 첫번째 예루살렘 총회에서 이방인의 할례의 문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의견을 피력합니다.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행 15:10~11)
용기를 얻은 바울과 바나바는 하나님께서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보고했고, 모든 것을 다 경청한 예루살렘 초대교회 당회장(?)인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립니다.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행 15:19~20)
결국 이방인의 할례는 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되었고, 다만 우상, 음행, 피, 목매어 죽인 것만 멀리하는 것으로 결정합니다. 이것이 첫번째 총회의 은혜로운 결정 사항이었습니다.
또한 바울의 보고에 의하면 가난한 자들에 대한 구제도 열심히 할 것을 당부한 것으로 보입니다(1:10).
더 나아가 바울은 이 총회를 통하여 초대교회 기둥과 같이 유력한 자들인 야고보, 게바(베드로), 요한이 자신의 사도직을 인정하여 친교의 악수를 청했고, 그들은 할례자인 유대인들의 사도로, 바울 자신은 이방인의 사도로 보냄을 받았다고 말합니다(2:7~9).
In the first Jerusalem Council, Peter offered his opinion on the matter of circumcision for the Gentiles:
"Now then, why do you try to test God by putting on the necks of the disciples a yoke that neither we nor our ancestors have been able to bear? No! We believe it is through the grace of our Lord Jesus that we are saved, just as they are." (Acts 15:10–11)
Encouraged, Paul and Barnabas reported on God’s work among the Gentiles, and James, the brother of Jesus and leader of the early church, concluded:
"It is my judgment, therefore, that we should not make it difficult for the Gentiles who are turning to God. Instead, we should write to them, telling them to abstain from food polluted by idols, from sexual immorality, from the meat of strangled animals, and from blood."
(Acts 15:19–20)
Thus, the decision was made that Gentiles would not need to be circumcised, but should avoid idol-related practices, immorality, strangled animals, and blood. This was the gracious decision of the first council. Paul also mentioned that the council urged them to continue helping the poor (Galatians 2:10). Furthermore, Paul reports that pillars of the early church, James, Peter (Cephas), and John, recognized his apostleship, giving him the right hand of fellowship and affirming that he would be sent to the Gentiles, just as they were apostles to the Jews (Galatians 2:7–9).
사도 바울의 사도직의 독자성과 동등성 (11~14절)
정확한 시기는 알 수는 없지만 베드로 사도가 안디옥 교회에 방문을 하게 됩니다.
아마도 사도 바울의 예루살렘 총회 방문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인 듯합니다.
바울은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함께 어울려 식사를 하다가,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할례당)을 보고는 두려워하여 식사 자리를 피하게 됩니다. 물론 그들은 야고보가 보낸 것이 아님이 분명합니다(12).
떠나 물러가매(12b) 동사의 시제가 미완료이기에 점점 그러한 자리를 피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입니다.
덕분에 함께 한 유대인들과 심지어 바나바까지도 그 외식에 참여했습니다.
아마도 이때부터 바울과 바나나 둘 사이가 갈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를 목격한 바울은 공개적으로 대사도 베드로를 책망합니다. 공개적인 죄를 행했기에 공개적인 책망을 통해서 바로잡으려는 것입니다. 바울의 책망의 내용은 베드로 본인이 유대인으로서 율법을 모두 지키지 않고 살면서, 억지로 이방인들로 율법을 지키게 말라는 것입니다(14). 이것이 외식입니다.
베드로의 반응이 성경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베드로가 바울에 대해서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벧후 3:15)라고 기록하는 것을 보아서 결코 그에 대한 마음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일 베드로가 바울의 책망을 받지 않고 대립했다면 초대교회는 쪼개졌을 것입니다.
반대로 바울이 베드로를 책망하지 않았어도 초대교회는 율법주의에 무너졌을 것입니다. 둘 다 위대한 사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이미 지난 과거 사건을 왜 갈라디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 기록한 것일까요? 그것은 유대율법주의 이단에 대항하여 자신의 사도직의 동등성과 독자성을 피력하려는 의도였던 것 같습니다. 막내 사도인 바울이 사도들의 수장인 베드로도 책망을 할 정도로 사도들은 말씀 앞에 동등한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처럼 복음과 어긋난 부분을 담대하게 말하고, 지적 받았을 때는 수정하려는 용기가 있습니까?
The Uniqueness and Equality of Paul’s Apostleship (Galatians 2:11–14)
Though the exact timing is unclear, Peter visited the church in Antioch, probably not long after Paul’s visit to the Jerusalem Council. During this visit, Peter dined with the Gentiles, but when certain individuals from James (the "circumcision group") arrived, Peter withdrew from the Gentiles out of fear. It is clear that these people were not sent by James (Galatians 2:12). The verb "withdrew" is in the imperfect tense, indicating a gradual process of avoidance. As a result, other Jews, including Barnabas, were led into hypocrisy. This may have been the point at which Paul and Barnabas began to separate.
Paul witnessed this and openly rebuked Peter because his actions were a public offense. Since Peter had sinned publicly, Paul addressed it publicly, confronting Peter for compelling the Gentiles to follow Jewish customs that he himself did not fully observe (Galatians 2:14). This was hypocrisy. The Bible does not record Peter’s reaction, but from Peter’s later writings, where he refers to Paul as a beloved brother (2 Peter 3:15), it’s clear that Peter harbored no ill feelings toward Paul. Had Peter not accepted Paul’s rebuke, the early church might have split. Conversely, if Paul had not rebuked Peter, the early church might have succumbed to legalism. Both apostles played a vital role in preserving the integrity of the church.
Why did Paul include this past event in his letter to the Galatians? It seems that he intended to defend his apostleship’s equality and independence in opposition to the Judaizers. Even the youngest apostle, Paul, had the courage to rebuke Peter, the leader of the apostles, showing that they were equal under the authority of the gospel. Like Paul, do we have the courage to speak boldly against what contradicts the gospel? And when corrected, do we have the courage to humbly accept it?
의롭게 됨 (15~21절)
이어지는 내용은 바로 베드로의 행위에 대한 책망의 연속이요, 동시에 갈라디아 교인들에 대한 책망으로 본 서신의 핵심 단어라고 할 수 있는 의롭게 됨, 곧 칭의에 관한 것입니다. 곧, 이신칭의의 교리입니다.
사람이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의한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베드로가 예루살렘 총회 때 주장했던 바입니다(행 15:10~11).
할례당들은 이러한 교리를 방종케 하는 잘못된 교리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이에 대한 변증을 합니다. 예수를 믿어도 얼마든지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그리스도를 죄짓게 하시는 분으로 만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는 것이 자신의 죄를 더할 뿐입니다(17~18).
이제 그리스도인은 율법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에 대하여 산 존재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사는 삶이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가능한 것입니다. 옛사람, 율법에 매여 있는 사울이 죽어야 그리스도와 함께 바울이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백한 것입니다.
은혜로 의롭다 함을 받은 이들은 이제 하나님의 양자가 되어 왕의 자녀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때론 연약하여 죄를 반복할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의 은혜는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주와 함께 죄에 대하여는 죽고, 의에 대하여는 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믿음안에 사는 것입니다.
Justification by Faith (Galatians 2:15–21)
The following passage continues Paul’s rebuke of Peter and also addresses the Galatian believers. It contains the central theme of the letter—justification by faith, also known as the doctrine of sola fide. People are justified, not by works of the law, but by faith in Christ. This is something Peter himself had affirmed at the Jerusalem Council (Acts 15:10–11).
The Judaizers claimed that this doctrine led to moral laxity. Paul argues that although believers in Christ can still sin, that does not make Christ a promoter of sin. Rather, returning to the law only increases sin (Galatians 2:17–18).
Christians have died to the law and now live for God. This is a life of dying and rising with Christ, possible only through faith. Saul, bound by the law, had to die so that Paul could live in Christ. Hence, Paul’s declaration, "I die daily" (1 Corinthians 15:31).
Those justified by grace are now adopted children of God, called to live lives worthy of royal children. Though we may falter and sin, God’s grace continues. Daily, we die to sin and live to righteousness, and this is the essence of living by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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