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3: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Jesus Teaches Nicodemus]
1 Now there was a Pharisee, a man named Nicodemus who was a member of the Jewish ruling council. 2 He came to Jesus at night and said, “Rabbi, we know that you are a teacher who has come from God. For no one could perform the signs you are doing if God were not with him.”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3 Jesus replied, “Very truly I tell you, no one can see the kingdom of God unless they are born again.”
3: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4 “How can someone be born when they are old?” Nicodemus asked. “Surely they cannot enter a second time into their mother’s womb to be born!”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3: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3: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5 Jesus answered, “Very truly I tell you, no one can enter the kingdom of God unless they are born of water and the Spirit. 6 Flesh gives birth to flesh, but the Spirit gives birth to spirit. 7 You should not be surprised at my saying, ‘You must be born again.’ 8 The wind blows wherever it pleases. You hear its sound, but you cannot tell where it comes from or where it is going. So it is with everyone born of the Spirit.”
3: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9 “How can this be?” Nicodemus asked.
Cogito, ergo sum, (코기토 에르고 숨)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프랑스의 물리학자이자 근대 철학의 아버지이고, 해석기하학의 창시자인 르네 데카르트(1596.3.31-1650.2.11)가 했던 가장 유명한 말입니다.
이것은 방법적 회의 끝에 도달한 철학의 시작점으로 철학의 1원리요, 인식론의 출발이 되었습니다.
데카르트는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다른 것들은 다 의심할 수 있어도, 그것을 의심하고 있는 “나”라는 존재 자체에 대해서는 의심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 주제인 “중생”에 연결하면, “나는 믿는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거듭나기까지는 우리 영적인 존재는 없는 것과 동일합니다. 그런데 성령의 역사로 예수를 믿을 수 있는 영적인 자아가 응애~ 하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세계에서 벌어지는 것이라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중생은 구원의 서정에서 믿음의 단계 전에 벌어지는 실제적인 영적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믿는 주체인 영적인 존재가 있어야 하나님을 믿을 수 있으니까요. 나는 예수를 믿는다, 고로 나의 영은 중생 했다 입니다. 믿음으로 거듭나는 것이 아니라, 거듭난 자만이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생은 100%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Cogito, ergo sum (I think, therefore I am)
This is the most famous phrase of René Descartes (March 31, 1596–February 11, 1650), a French physicist, father of modern philosophy, and founder of analytical geometry.
It represents the starting point of philosophy that Descartes reached after methodical doubt, serving as the first principle of philosophy and the foundation of epistemology.
Descartes concluded that while one might doubt the existence of all else, one cannot doubt the existence of the “I” that doubts.
If we connect this to today's topic of "rebirth," it can be expressed as: "I believe, therefore I exist."
Until one is born again, their spiritual being is effectively nonexistent. However, through the work of the Holy Spirit, a spiritual self that believes in Jesus is born, crying out like a newborn. This is an event in the spiritual realm that cannot be seen or understood with the naked eye.
Yet, being born again is a real spiritual event that precedes the stage of faith in the order of salvation. This is because only a spiritual being can believe in God. In essence: "I believe in Jesus, therefore my spirit has been reborn." It is not that one is born again through faith, but rather only those who are born again can believe. Therefore, rebirth is 100% an act of God's grace.
표적을 보고 믿는 자들 (2:23~25)
어제 읽지 않았던 2:23~25절은 오늘 본문과 오히려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 이유는 그가 행하는 표적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누구의 증언도 도움도 필요 없이 자신의 사역을 감당하실 수 있는 분이고, 더 나아가 사람의 속까지도 다 아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요한복음은 7가지 Ἐγώ εἰμι, 에고 에이미~, 나는 ~ 이다 라는 표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모세에게 하나님이 정체성을 밝힐 때 사용했던 “나는 나다” I am who I am와 동일한 표현입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6:35), 나는 세상의 빛이다(8:12), 나는 양의 문이다(10:7,9),
나는 선한 목자라(10:11),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11:25),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14:6),
나는 참 포도나무다(15:1.5), 그리고 이 모든 명제는 전후에 발생하는 이적을 통해서 증명됩니다.
Believers Who See Signs (John 2:23–25)
Verses 23–25 of chapter 2, which were not read yesterday, are closely related to today’s text. People believed in Jesus because of the signs He performed. However, Jesus, being omniscient and self-sufficient, did not need any testimony or help from others to carry out His ministry.
The Gospel of John includes seven "I am" statements (Ἐγώ εἰμι, Ego eimi~), such as "I am the bread of life" (6:35), "I am the light of the world" (8:12), "I am the gate for the sheep" (10:7, 9), "I am the good shepherd" (10:11), "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11:25), "I am the way, the truth, and the life" (14:6), and "I am the true vine" (15:1, 5).
These statements echo God's self-revelation to Moses—"I am who I am"—and each is supported by miraculous signs.
그 중에 한 명 니고데모 (3:1~8)
요한은 표적을 보고 믿는 사람 중 한 명을 니고데모로 소개합니다. 그는 지도자(관원) 입니다.
최고의 종교기관이요, 법률기관이요, 통치기구인 산헤드린 공의회의 71명 중 하나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는 존경받는 바리새인이요, 예수님 장례에 몰약과 침향 100리트라(32.7kg)를 기증한 부자였습니다(요 19:39). 또한 공의회에서 예수님을 변호한 제자이기도 합니다.
그 중의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말하되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 (요 7:50-51)
그는 친히 예수님을 방문하여 랍비라고 호칭했던, 편견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불완전하지만 다른 바리새인들과 달리 영적인 통찰력이 있는 겸손한 그의 고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주님은 본론으로 돌진하십니다.
중생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합니다. 즉 구원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중생이 무엇인가요? 헬라어로 ἄνωθεν아노덴으로 처음부터, 철저히, 완전히/다시, 두 번째/위에서부터, 하나님께로부터 라는 의미입니다. 중생에 대해서 많이들 오해합니다.
저 사람 거듭났어 를 그 사람의 삶이 바뀐 것, 옛 습성을 버리고 새사람 된 것으로 많이 표현합니다. 하지만 영적인 중생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서론에 밝힌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주체인 영적인 사람(영혼)의 (재)탄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서정Ordo Salutis에서 중생이 회개와 믿음보다 먼저 위치하는 것입니다.
One Among Them: Nicodemus (John 3:1–8)
John introduces Nicodemus as one of those who believed because of the signs. He was a ruler, a Pharisee, and one of the 71 members of the Sanhedrin, a respected council of religious, legal, and governing leaders. Nicodemus was also wealthy, contributing 100 litras (about 32.7 kg) of myrrh and aloes for Jesus’ burial (John 19:39), and a disciple who defended Jesus before the council:
Nicodemus, who had gone to Jesus earlier and who was one of their own number, asked, “Does our law condemn a man without first hearing him to find out what he has been doing? (John 7:50–51).
Nicodemus approached Jesus respectfully, addressing Him as "Rabbi" without bias. Despite being a religious leader, he sought deeper spiritual understanding, making a humble confession of faith.
When Nicodemus met Jesus, the Lord immediately addressed the core issue: "Unless one is born again, he cannot see the kingdom of God." In other words, salvation is impossible without rebirth.
The Greek term for "born again" (ἄνωθεν, anothen) can mean "from the beginning," "thoroughly," "completely," or "from above." Many misunderstand spiritual rebirth, equating it with life changes or moral improvement. However, spiritual rebirth refers to the (re)birth of the spiritual self, which becomes the subject of faith in Jesus Christ. Thus, in the order of salvation (Ordo Salutis), rebirth precedes repentance and faith.
그러자 니고데모는 놀라며 예수님께 다시 질문합니다(4). 어떻게 해야 사람이 다시 어머니 뱃속으로 들어가서 나오냐는 것입니다. 현재 그의 생각은 육체에만 머물러 있는 수준입니다.
조금 전에 말한 것처럼 중생은 100% 영적인 사건입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육적인 것에도 미칩니다.
중생의 방법은 물과 성령으로 밖에는 불가능합니다. 성령은 알겠는데, 물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물에 대한 여러가지 해석들이 존재합니다. 세례다, 아니다 요한은 물을 성령을 비유할 때 사용하므로, 물 곧 성령으로 라고 해석해야 한다 등등. 만일 물을 세례라고 한다면 세례를 받지 않으면 중생할 수 없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에 위험합니다. 개인적으로 물은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이 외적으로 그것을 표현하는 공식적인 행위인 세례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곧 믿음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믿음과 성령입니다.
결국 중생은 영적인 사건이고, 100% 성령(프뉴마/루아흐)에 의한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이 신비로운 사건을 바람(루아흐)에 비유합니다. 바람은 그 시작과 끝을 알 수 없고, 통제도 불가능합니다. 보이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바람은 존재할 뿐 아니라, 어마어마한 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람의 존재를 느낄 수 있습니다. 성령도 거듭남도 그렇습니다.
Nicodemus, puzzled, asked Jesus how a person could re-enter their mother’s womb to be born again, demonstrating his physical perspective.
Rebirth is entirely a spiritual event, though its effects extend to the physical realm. It is only possible through water and the Spirit. Interpretations of "water" vary: some say it symbolizes baptism, while others argue it refers metaphorically to the Spirit, as John often uses water to symbolize the Spirit. If water were to signify baptism, it could imply that rebirth is impossible without baptism, which is problematic.
Personally, I view water as representing baptism, an outward expression of spiritual rebirth, and therefore linked to faith. In essence, rebirth occurs through faith and the Spirit.
Ultimately, rebirth is a 100% spiritual event, entirely the work of the Holy Spirit (Pneuma/Ruach).
Jesus likened this mysterious event to wind (Ruach), which cannot be seen, controlled, or traced but is undeniably powerful and perceptible. Similarly, the Holy Spirit and rebirth are real and impactful.
그렇다면 니고데모는 중생 했을까요? 중생 했다면 언제 중생 했을까요?
제가 보기에는 이미 그는 중생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온 것으로 보입니다. 당신은 언제 중생 했습니까? 저는 초등학교 3~4학년 맹장수술하고 머물던 병실에서 중생한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분명한 것은 “나는 믿는다. 고로 존재한다.” 입니다. 영적으로 태어난 존재라는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밤에 예수께 와서”, 자존심, 위험성을 감수하고 주님을 찾아 왔습니다.
그는 어둠 가운데 빛 되신 예수께로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빛이 그에게 비추어집니다.
빛 가운데로 나와야 합니다. 이 새벽에 빛 가운데 나와 있는 당신과 나는 중생한 자가 분명합니다.
태어났다면 이제 성장합시다! 빛을 받으며, 생명의 떡되신 예수를 먹으며 성장합시다!
When Was Nicodemus Born Again?
Nicodemus must have already been reborn to seek out Jesus. When were you born again? For me, I believe it happened during my hospitalization for appendicitis in elementary school.
One thing is certain: "I believe, therefore I exist." Spiritually, this means being born into a new existence.
Nicodemus approached Jesus at night, risking his reputation and safety. He came out of the darkness to the Light and was illuminated by it.
This dawn, as you and I come into the Light, we are assured of our rebirth. If we are born, we must now grow! Let us grow by receiving the Light and feeding on the Bread of Life, J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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